가을이 저만치 달아난다고 해서 아쉬워할 일도, 슬퍼할 일도 아니다. 아직 가을을 붙잡고 있는 단풍 계곡이 남아 있으니 자리를 박차고 나서야 할 때다. 오색찬란한 색이 산을 물들이다 못해 계곡까지 붉은 단풍 물이 흐르는 곳! 경기도와 경기관광공사에서 경기도 청정계곡 복원사업으로 재발견된 늦가을 단풍 품은 계곡을 추천한다.
경기 북부 최고의 단풍 계곡, 포천 백운계곡
포천 백운산은 산림청이 100대 명산으로 꼽을 만큼 수려한 산세를 자랑한다. 광덕산, 국망봉, 박달봉과 같은 높은 봉우리들이 어깨를 나란히 하면서 산군을 이루고, 절벽이 많아 계곡의 볼거리를 더해 산꾼들에게는 이미 유명하다.
사계절 아름답지만 가을이면 붉게 지는 단풍 비가 산 곳곳을 물들인다. 험난한 산행을 원치 않는다면 백운계곡 관광단지 쪽을 들머리 삼아 천천히 백운계곡을 끼고 올라야 가장 무난한 단풍 길이다. 한탄강지질공원의 일부인 백운계곡은 백운산 정상에서 서쪽으로 흘러내리는 맑은 물이 모여 이룬 10km의 골짜기다. 계곡 입구엔 천년고찰 흥룡사가 있다. 단풍 옷을 입은 산을 배경으로 선 사찰을 감상할 겸 경내를 한 바퀴 휘 둘러봐도 좋다. 이곳에는 세종대왕의 친필이 보관되어 있다. 발길을 돌려 계곡을 따라 산을 오르면 비로소 단풍이 익어가는 길이 열린다. 선유담과 금광폭포, 취선대 등 곳곳에 물이 조각해 놓은 작은 연못과 폭포가 있어 심심치 않다.
‘구름 가운데 신선이 앉았다’는 이름처럼 신선이 즐겼을 법한 단풍 빛이 늦가을을 불태우고 있다.
참나무의 그윽한 가을빛, 양주 장흥관광지
양주 장흥관광지는 ‘추억의 유원지’다.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에서 접근성이 좋아 198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MT장소와 피서지로 사랑받았다. 울창한 숲을 끼고 맑은 물이 흐르는 덕에 가족 단위의 물놀이객도 즐겨 찾았다. 2003년부터는 문화 예술 공간과 예쁜 카페가 곳곳에 들어서면서 데이트 코스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올해, 계곡 가의 불법 시설물을 정리했다는 소식이 유독 반갑다. 불법 시설물에 가려져 있던 자연이 비로소 제 모습을 회복해 한층 예쁜 가을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장흥관광지는 개명산을 정점으로 왼편으로는 황새봉과 앵봉이, 오른편으로는 일영봉 사이로 석연천이 굽이굽이 돌아 흐른다. 골짜기 주변으로는 밤나무와 갈참나무, 소나무가 어우러진 숲이 있다. 산 정상부터 계곡까지 부드럽게 타고 흐르는 능선에 알록달록 단풍이 들면 장관을 이룬다.
장흥관광지의 단풍빛은 부드럽고 은은하다. 단풍을 구경하면서 산책을 하고, 드라이브를 즐기기에 안성맞춤이다. 이맘때는 낙엽이 길과 도로, 계곡까지 뒤덮어 장관이다. 온몸을 뒤척이며 날리는 낙엽을 보러 가려면 지금도 늦지 않았다.
천년의 세월 품은 노란 은행잎, 양평 용문산
전국구로 소문난 가을 단풍 명소로 용문산을 빼놓을 수 없다. 용문산 단풍여행은 용문산관광지에서 시작한다. 대개 10월 중순부터 물들기 시작한 단풍은 11월 초 절정을 이룬다.
관광지 입구에는 열 맞춰 선 은행나무 가로수가 먼저 여행객을 맞는다. 샛노란 은행나무 물결을 지나 눈을 들면 웅장한 용문산이 떡하니 버티고 섰다. 짙푸른 녹음은 온데간데없고, 수줍은 듯 온 산이 얼굴을 붉히고 있다. 산의 전경을 감상하고 난 뒤에는 힘차게 흐르는 계곡을 끼고 용문사로 발길을 잡는다.
오솔길 양편으로 오색빛깔 단풍이 요란하다. 길옆 계곡으로 눈을 돌려도 물빛이 오색빛깔이다. 단풍이 비추어서도 그렇고, 낙엽이 떨어져서도 그렇다. 300m가 채 되지 않는 짧은 길이지만 사진과 마음에 가을을 담다 보면 시간이 훌쩍 지난다.
용문사에 다다르면 용문산 단풍여행의 백미인 천연기념물 30호 은행나무와 마주하게 된다. 높이 42m, 수령 1100년 된 은행나무는 늦가을이면 천년 동안 그래왔듯 황금빛 은행잎을 우수수 쏟아낸다. 이 절경을 보려고 해마다 수많은 사람이 가을 용문산을 찾는다.
경기 소금강의 고운 단풍꽃, 가평 운악계곡
‘구름을 뚫은 봉’이란 이름처럼 기암괴석으로 된 운악산은 화악산, 관악산, 감악산, 송악산과 함께 어려운 산, ‘경기 5악’으로 불린다. 하지만 ‘경기 소금강’이라 불릴 정도로 산세가 빼어나기도 하다. 형형색색의 꽃처럼 물든 가을 운악산을 보기 위해 단풍 여행객의 발길이 끊이질 않는 이유다. 고운 단풍을 보려고 꼭 정상에 오르지 않아도 된다. 운악계곡을 따라 현등사까지만 걸어도 가을 정취를 느끼기에 충분하다. 주차장에 차를 대고 매표소를 지나면 일주문이 바로다.
조금 걸었을 뿐인데 우거진 숲의 느낌이 완연하다. 나무마다 앞다퉈 단풍꽃을 피우고 여행객을 맞는다. 단풍에 눈길 한 번 주면 자연스레 물길에도 눈이 간다. 현등사까지 2km에 걸쳐 있는 계곡은 현등사계곡으로도 불린다. 이 계곡의 바위는 마치 하나의 거대한 바위로 된 듯 매끄럽게 이어진 모습이 독특하다.
오르는 길에는 백 년을 변함없이 흐른다는 백년폭포와 20m 길이의 무운 폭포도 만나볼 수 있다. 계곡을 가까이 보고 싶다면 물가로 가만히 내려가 보자. 맑은 물에 동동 떠내려가는 붉은 단풍잎처럼 가을에 흠뻑 취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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